영화이야기

베를린 유승범

guem56 2013. 2. 5. 18:17

1970년대 어느날

월남은 패망했다

 

보트피플

파도에 기울어진 작은 배를 타고

퀭한 눈의 월남 난민은

하얀 삿갓모자를 쓰고

동남아 바다를 떠돌았다

 

그 사진을 보고 나면

교련시간에 더 힘차게 나무로 깍은 총을 잡고

운동장을 돌아야 했고

저녁이 되면

두개째 도시락을 먹고

수학 정석을 풀었다

 

형광등도 졸아가는 밤 10시쯤

어느날 독일어 수업은

자율학습에서 빠졌다

 

대한민국의 유수한 대학

본고사에서 독일어는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하이네의 로렐라이

흑백의 절벽 사진은 더 이상 구경할 필요가 없었고

독일어 정관사 변화표는  외우지 않아도 되었다

 

베를린은 그렇게 독일어 교과서에서

로렐라이 언덕과 함께 기억의 오랜 창고에 저장되었다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을 뛰었고

일장기를 부욱 찢으면서 결승라인을 통과했다고

어린 나이에 들었으나

금메달을 히틀러가 걸어주었고

 

신문사 윤전기가 돌아가기 전에

일장기 문양에 금을 그어서 태극기처럼 만든 사람이

현진건이었다는 사실은 오랜 뒤에 알았다

 

독일어책엔

서베를린 하늘 위를 날아가는 미국의 대형수송기 사진이 있었다

왜 생필품을 공수해야 하는지 그런 사연은 잘 몰랐으나

서베를린 시민은 연합국의 물자지원으로 자유를 얻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케네디가 베를린을 다녀가고

세월은 한참 흘러

장벽이 무너지고

고르비와 옐친이 동독을 다녀간뒤

소련군은 철수했고 독일은 통일이 되었다

 

한때 서베를린으로 철조망을 넘어오다 죽어간

동베를린 시민들의 사진들이 신문에 실렸었으나

베를린은

자유와 희망의 도시가 되었다

 

 

그 베를린에 2013년 초에

유승범이 나타났다

 

그는 베를린을

회색의 도시로 바꾸었다

 

베를린을

보고 나서

유승범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걸 잘 모르겠더만

 

나는 유승범은 죽기를 바랬다

영화속에서 그는 악인이었고

나는 현실을 망각한 채

영화속에 깊이 함몰되었다

 

유승범은 <부당거래>에서

현실감각이 뛰어난 검사역을 잘 소화했다

 

다음 영화에선 어떤 직업으로 나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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