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백거이 (九年十一月....)

guem56 2015. 12. 16. 12:31

九年十一月二十日感事而作

 

835년 대화(大和)9년 십일월 이십일

장안에서 발생한 참사를 듣고 이 시를 지었다

 

禍福茫茫不可期

大都早退似先知

當君白首同歸日

是我靑山獨住時

 

화와 복은 복잡하게 얽혀

앞날을 내다 볼수 없더라만

 

일찍이 장안을 떠났으니

미리 뭔가 알았음이라

 

그대들은 이제 죽어

함께 저승으로 가는데

 

나는 홀로

청산에 머무는 구나

 

顧索素琴應不暇

憶牽黃犬定難追

麒麟爲脯龍作醢

何似泥中曳尾龜

 

거문고를 찾아 뜯을

겨를이 없고

 

누렁이를 앞세워

그대들을 따르기도 어렵구나

 

기린이 육포가 되고

용의 살은 술을 담그니

 

진흙뻘에 꼬리를 끄는

거북이 팔자인들 어떠리요

 

<화복망망불가기 대도조퇴사선지

  당군백수동귀일 시아청산독왕시

 

  고색소금응불가 억견황견정난추

  기린위포용작해 하사니중예미구>

 

당나라 문종 이앙(李昻 809~840)은

환관들의 추대를 받아 제위에 올랐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문종은 재상 이훈(李訓)의 도움을 받아

환관들을 일거에 제거하려 했으나

 

 환관 구사량(仇士良)이 사전에 눈치를 채는 바람에 궁안으로 납치되고

성문을 닫은 상태에서 안에 있던 수많은 벼슬아치들이 환관세력에 의해

도륙을 당했다

무려 600여명이 죽었다

 

이때 백거이는 태자소부(太子少傅)의 벼슬을 제수받고

낙양에 머물러서 참화를 피했다

 

태자소부란 태자의 스승 역할인데 실제 하는 일은 거의 없고

녹봉은 받는 자리였으며

당나라는 낙양을 중요시해서

 

원래 수도인 서안과 함께 제 2의 수도로 삼았는데

여러 직위의 명예직에 해당하는 대신들을

낙양에 머물게 했으며 이를 분사(分司)라 한다

 

백거이는 이런 연유로

낙양에서 한가로이 지내던 시절에 감로지변이란 참화가 발생했다

뜬금없이 죽어간 사람들은

백거이와 함께 급제한 동기의 재상과 고위직이 다수 포함되었다

 

위 시는 그 사건을 듣고 백거이가 지었는데

그 뜻이 역시 애매모호하여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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